승리 후에 무엇을 취할 것인가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여호수아 7:13]
승리는 삶을 넓혀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오히려 기준을 더 분명히 요구하는 시간입니다. 여리고가 무너진 뒤 이스라엘 앞에 놓인 길은 쉬워 보였고, 선택지는 많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에 가장 분명한 선을 그으십니다. 취하지 말라는 명령은 빼앗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이 승리가 누구의 손에서 왔는지를 잊지 말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형통의 시간은 신앙을 증명하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앙의 중심이 가장 쉽게 이동하는 순간입니다. 고난 속에서는 하나님을 붙들 수밖에 없지만, 일이 잘 풀릴 때에는 말씀보다 판단이 앞서고, 순종보다 계산이 앞서기 쉽습니다. 그 변화는 소란스럽지 않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우리는 여전히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은 바로 이 조용한 이동이 공동체를 멈추게 하는 가장 깊은 원인임을 보여 줍니다.
아이 성 앞에서 하나님은 전략을 묻지 않으시고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다”는 선언은 개인의 일탈을 고발하기보다, 공동체 전체의 중심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밝히는 말씀입니다. 아간의 선택은 잔혹하지 않았고, 극단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합리적으로 보이며, 세상의 관행과도 어긋나지 않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더욱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신앙의 붕괴는 노골적인 반항에서 시작되기보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판단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판단을 범죄라 부르십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할 자리에, 상황을 기준으로 말씀을 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애쓰라고 하지 않으시고, 더 성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결은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이 아니라, 숨겨 둔 것을 드러내고 잘못 붙든 것을 내려놓아 삶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는 실제적인 순종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의 삶을 가만히 멈추게 하며 우리의 발걸음이 놓인 자리를 비춥니다. 세상은 성취의 자리에서 더 움켜쥐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오히려 손을 펴라고 부르십니다. 손에 남겨 두고 싶은 것, 굳이 내려놓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이는 것,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 조용히 쌓여 갑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 은밀한 소유가 하나님과의 동행을 가로막는 짐이 될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성결은 예배의 분위기에서 완성되지 않고, 하루의 선택 속에서 분명해집니다. 말의 경건이 아니라 삶의 방향에서, 고백의 열심이 아니라 기준의 위치에서 드러납니다. 내려놓지 않은 채 계속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백성을 멀리 보내지 않기 위해, 때로는 걸음을 멈추게 하시고 삶의 자리에서 다시 정렬하게 하십니다. 취함을 줄이고 내려놓음을 선택하는 그 조용한 순종의 자리에, 하나님은 다시 동행의 은혜를 회복시키시며, 그 길 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된 평안과 생명의 깊이를 허락하십니다. 오늘도 그 자리에서, 말씀이 삶의 기준으로 다시 서는 은혜가 조용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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