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오신다: 말씀을 기업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신명기 33:3-4]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신명기 33장은 모세의 마지막 축복으로 시작됩니다. “죽기 전에”라는 말은 단지 시간의 표시가 아니라, 한 시대가 저물어도 하나님은 저물지 않으신다는 언약의 선언입니다. 지도자는 떠나지만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말은 끝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끝나지 않습니다.
모세의 축복은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결심이나 능력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오신다”로 축복을 시작합니다(33:2).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지켜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 가운데 오시는 분이시며, 시내 산에서 언약을 세우시고, 광야의 길에서 비추시며, 거룩한 임재로 강림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시작이었고, 이스라엘의 지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의 시작은 ‘내가 무엇을 해낼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오신다’는 사실을 다시 붙드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실 때는 단지 위로의 감정만이 아니라, 왕의 통치가 임합니다. 그 통치는 우리의 기준을 바꾸고, 우선순위를 바꾸고, 삶의 구조를 다시 세웁니다.
그 임재의 하나님을 가장 복음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33장 3절에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세는 광야의 실패를 보았고, 인간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남기는 말은 이스라엘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언약의 사랑입니다. 조건이 만족될 때만 유지되는 사랑이 아니라, 택하시고 붙드시는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손으로 자기 인생을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의 흔들림을 이유로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손 안에서 우리를 다시 세우십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복은 ‘말씀 앞에 앉는 자세’로 드러납니다. 말씀을 평가하고 소비하는 자리에 서면 신앙은 점점 메말라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앉아 말씀을 받으면, 말씀은 단지 정보가 아니라 삶을 형성하는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말합니다. “율법은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다(33:4). 기업은 장식이 아니라 토대입니다. 흔들릴 때 붙드는 근거이며, 다시 정렬할 기준입니다. 말씀을 기업으로 삼는 공동체는 결국 다시 말씀 앞에 모이고, 다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정렬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공동체의 중심을 분명히 합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지도자가 아니라 왕 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실 때 지파는 함께 모이고, 공동체는 흩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사람의 매력이나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왕으로 임재하시고 말씀이 기업으로 작동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신앙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오신다는 사실 앞에 서고,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며, 말씀을 기업으로 붙들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삶. 이것이 모세가 남긴 마지막 축복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복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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