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사무엘상 6:20]
신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열심보다,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 마음의 자리에서 그 깊이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며 기도를 이어가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 앞에 서 있던 내면의 긴장과 떨림이 서서히 풀려 버린 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가까이 계시지만, 그 가까우심이 경외가 아니라 익숙함으로 바뀌어 버릴 때, 신앙은 조용히 중심을 잃어갑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맞이하는 은혜를 누렸지만, 그 거룩 앞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지 않았고, 오히려 가까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가까움이 경외를 낳지 못하고 익숙함으로 흘러갔을 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신앙의 깊이는 하나님과의 거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셔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멈추어 서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이 고백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인간이 비로소 자기 자리를 발견한 자리에서 흘러나온 탄식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결코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신앙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쌓아 올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 알고, 더 경험하고, 더 열심히 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괜찮아져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나를 붙드셔야만 설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자라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의존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더 당당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낮아지는 것입니다. 말이 줄어들고, 판단이 늦어지며, 내 기준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게 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예배는 더 이상 형식이 아니라 실제가 되고, 기도는 요구가 아니라 의탁이 되며, 말씀은 정보가 아니라 나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삶은 결국 존재의 방향이 바뀌는 삶입니다. 내 삶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삶은 요란하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예배의 자리에 설 때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마음을 낮추고,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기보다 드러내어 맡기며, 기도 속에서 내 뜻을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어 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지만, 그의 삶에는 분명한 무게가 있습니다. 상황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을 더 의식하고, 사람을 대할 때도 자기 감정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를 먼저 돌아봅니다. 익숙함이 무너진 자리에서 경외가 다시 살아나고, 그 경외 속에서 은혜는 더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될수록,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더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서 있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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