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17:6]
신앙이 무너지는 일은 대개 큰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떠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마음의 중심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기준이 흐려지고 하나님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기 시작할 때, 무너짐은 이미 시작됩니다. 사사기 17장은 바로 그런 조용한 영적 균열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미가의 집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있습니다. 봉헌도 있고 신당도 있으며 제사장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신앙의 모양이 남아 있는 집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말도 있고 종교적인 행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순종보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는 신앙, 여호와의 이름은 말하지만 실제 삶의 기준은 자기 소견에 두는 삶이 그 집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사기는 바로 그 조용하지만 깊은 영적 무너짐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미가는 자신의 집에 신당을 세우고 에봇과 드라빔을 두며 제사장까지 세웁니다. 겉으로 보면 종교적인 모습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말씀 앞에서 순종하여 세워진 질서가 아니라, 사람의 필요와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신앙의 모양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자기 삶의 질서 안에 끌어다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사람이 중심이 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시대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지 않으시면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중심에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중심이 된 삶은 언제나 자기 생각을 옳다고 믿는 길로 흘러갑니다. 하나님 없이도 종교의 모양은 남을 수 있습니다. 예배의 형식도, 신앙의 언어도, 종교적인 열심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참된 신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지 않는 종교는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오래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경험과 판단을 더 신뢰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기보다 스스로 결정하고, 말씀 앞에서 멈추기보다 익숙한 방식으로 길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보다 내 생각이 앞서는 순간들이 조금씩 쌓여 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지금 내 삶의 중심에는 누가 왕으로 자리하고 있는가.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말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우리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다시 왕으로 자리하실 때 우리의 신앙은 종교적 습관을 넘어 살아 있는 믿음으로 회복됩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 다시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서서, 자기 소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걷는 믿음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삶 속에서 우리의 길은 다시 바로 서고, 우리의 신앙은 다시 하나님을 향해 깊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