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펴서 나누는 은혜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명기 15:10]
광야의 오랜 세월은 이스라엘에게 잊을 수 없는 한 진실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백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에서 아침마다 내려온 만나가 하루의 숨을 열어주었고, 메마른 돌 틈에서 터져 나온 물이 그들의 생명을 지탱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방향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은혜의 그늘 아래, 보이지 않는 손의 보호 속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의 손은 지금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이 질문은 결국 “너의 마음은 어디에 붙들려 있느냐”는 더 깊은 질문입니다. 사람의 손은 마음의 모양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기억이 흐려지면 마음은 자연히 굳어지고, 굳어진 마음은 손을 닫히게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영혼은 삶의 작은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 받은 것들을 떠올리고, 그 기억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결국 손을 열게 합니다. 열린 손은 행동이기 전에, 여전히 은혜로 살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하나님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부족함을 말하는 현실 진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동체 한복판에 ‘필요한 사람들’을 두셨다는 영적 선언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를 비추어주는 하나님의 거울입니다. 은혜의 기억이 희미해진 사람에게 가난한 자는 부담으로 보이지만, 은혜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그들의 모습은 지나온 과거의 나 자신의 초상처럼 다가옵니다. “나 역시 은혜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고백이 심령 깊은 곳에서 다시 울려 퍼질 때,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그 부드러움이 손끝으로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중심구절은 말합니다.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는 단순한 윤리의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닮으라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자의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자신의 길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에게 손을 펴는 행위는 인간의 선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어마어마한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다시 흘려보내는 거룩한 순종의 자리입니다. 나누는 자리에서 사람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다시 은혜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신 것은 “얼마나 주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느냐”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가만히 돌아보면, 능력이나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사랑과 조용한 도움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마련해 두신 은혜의 발자국을 밟으며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이 현실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소유를 우리의 안전망으로 붙들지 않고, 은혜를 삶의 근거로 붙들게 됩니다. 그러면 나눔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이 되고, 부담이 아니라 감사가 됩니다. 작은 친절 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드리는 조용한 기도 하나, 내 시간을 떼어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고 따뜻한 손길,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에 스며드는 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열린 손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표지이며, 그 열린 손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우리 가운데 길을 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다시 은혜의 기억을 일으키고, 그 기억이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부드러워진 마음이 우리 삶의 방향을 바꿔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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