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사무엘상 2:18]
하나님 가까이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안심시킬 때가 있습니다. 익숙한 예배의 자리, 반복되는 기도, 손에 익은 신앙의 언어들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를 괜찮다고 여깁니다. 특별히 흔들리는 일도 없고, 눈에 띄게 무너진 것도 없어 보이기에,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 익숙함 속에서 우리를 조용히 멈춰 서게 합니다. 하나님 곁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어질 수 있고, 많은 것을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가장 깊은 문제는 언제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보다, 마음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는 그 지점에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일상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곁에 머물러 있을 뿐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의 중심에 있었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일들을 맡고 있었으며, 누구보다 하나님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취하던 모습은, 단순한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앞서 있는 상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 안에서조차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그것이 그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앞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 속에도, 우리의 선택 속에도, 하나님을 향하기보다 내 필요를 먼저 붙드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묻기보다 이미 정해진 마음을 들고 나아가고,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결과를 먼저 계산하는 익숙한 습관들이 우리 안에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앙은 무너질 때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여전히 예배하고, 여전히 믿는다고 말하지만, 중심이 조금씩 다른 곳으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자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장면 속에서 사무엘은 조용히 서 있습니다. 그는 특별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여호와 앞에서”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이 한 문장이 그의 삶을 충분히 설명합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드러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삶. 그의 하루는 반복되고, 눈에 띄지 않으며, 특별한 사건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삶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서 있는 방향이었습니다. 해마다 한나가 지어오는 작은 겉옷이 조금씩 커지듯, 그의 삶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삶은 그렇게 자라갑니다. 급하게 변하지 않고,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하게 하나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람의 눈에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조용한 자리를 통해 자신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자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서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천천히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거창한 결심이나 특별한 행동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방향의 전환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잠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을 한 번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순간, 말을 하기 전에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있는지를 돌아보는 짧은 멈춤,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려는 조용한 태도. 그런 작고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방향을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때로 넘어지고,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겠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삶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방향이 분명하기 때문에 붙들림을 받습니다. 오늘도 그 자리로, 조금 더 하나님을 향한 자리로, 우리의 마음이 조용히 옮겨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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