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믿음으로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막 6:50]
오늘 말씀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로 나아가지만 그들에게 뒤따른 것은 풍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불순종뿐 아니라 순종하는 길 또한 늘 순탄치만은 않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하여 칠흑 같은 밤, 가장 어두운 시간인 밤 사경쯤에 누군가 걸어오는 것입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제자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인가 하여 놀라 소리쳤지만 바로 그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제자들에 두려움이 그들의 믿음을 삼키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해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수 없는 문제로 가득한 순간, 두려움에 휩싸여 정작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가까이 오시는데도 전혀 보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갖는 순간 그 두려움의 부정적 위력에 압도되어 믿음을 잃게 됩니다. 그 두려움은 '나'를 비롯하여 개인에서 공동체 전체로 퍼지게 되고 우리는 자신을 생각해도 두렵고 이웃을 생각해도 두렵습니다. 두려움은 우리 안에도 있고 주변에도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있고 먼 곳에서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두려움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반응 속에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이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풍랑이 아무리 커 보여도 나는 그 풍랑 위를 걸을 수 있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의 원인은 내가 가진 감정적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주님을 불신하고 오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영적 시야가 닫혀 주님을 유령으로 오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평안의 시작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하고 계심을 아는 것에서부터 평안이 시작됩니다. 그 증거가 오늘 본문 51절 말씀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주님은 먼저 바람을 잠잠케 하신 것이 아니라 배에 먼저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잠잠해졌습니다. 이 말은 우리는 종종 상황을 먼저 해결해달라고, 문제가 사라지면 믿겠노라고 기도하지만 성경의 방식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받아들이면, 주님을 먼저 내 배에 모시면 그 다음에 바람이 그친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그치게 해주시면 예수님을 더 잘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이 내 두려움 위에 오르실 때, 내 상황안에 머무실 때, 그 때 바로 나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예수님이 내 배에 오르시기 전에 기도하기 때문에 바람이 잔잔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잔잔하지 않는 상태에서 주님을 받아들이십쇼. 몰아치는 풍랑 가운데서 먼저 주님을 맞이하십쇼. 그러면 잔잔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이 먼저 나의 배에 오르셔서 내 마음과 생각 가운데 자리를 잡으실 때, 내 흐트러졌던 감정이 정돈되고, 흔들리던 내 생각이 안정되고, 그 두려움이 주님 주신 평안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내 배에 오르시고 머무시도록 주님을 안내하는 안내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53-56절 말씀은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가 낫고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소망을 얻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에 치유와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주님이 먼저 이거 해결해주시면 오르시도록 해드릴게요. 라며 막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저 칠흑같이 깊은 어둠 속에 유령처럼 보였던 주님을 우리가 오해하지 않고 그분을 내 배에 모시는 순간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처럼, 우리의 두려움이 변하여 평안이 되고, 무너진 마음이 회복되고, 나의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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