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하여야 할 때
[이사야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대림절의 문턱에 서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숨결 하나가 고요히 올라옵니다. 바쁘게 달려오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려는 조용한 손길이 우리 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사야는 바로 그 순간을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는 한 문장으로 보여 줍니다. 서로를 위협하던 것이 함께 먹고, 날카롭던 본성이 온유함으로 옮겨가는 모습은 단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내면의 평화를 은유합니다. 대림절은 단순히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빚어지는 시간입니다. 오래 쌓인 생각의 먼지가 가라앉고, 마음속 깊은 상처의 울림이 잦아드는 자리에서 비로소 주님의 오실 길이 서서히 열립니다.
이 평화의 세계는 외부 질서가 바뀌어 생기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안의 무엇인가’가 조용히 힘을 잃어갈 때 열리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낮아짐과 비움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했던 이유는,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빛이 흐려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강한 자아, 상처에서 비롯된 방어 본능, 잃을까 두려워 움켜쥐고 있는 습관들, 인정받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이 모든 것이 ‘쇠해 갈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심으실 공간이 열립니다. 쇠함은 결코 패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라기 시작하는 은밀한 토양입니다. 마음의 굳은 땅이 갈라지는 순간, 온유가 싹트고, 평안이 꽃피고, 어두운 음성이 줄어들 때 성령의 숨결은 더욱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주님의 오심 앞에서 너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느냐.” 우리의 자아가 놓여지면 주님의 온유가 자라나고, 우리의 고집이 쇠하면 하나님의 평화가 깊어지며, 우리의 상처가 힘을 잃을수록 그 자리에는 그리스도의 빛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운 마음을 빈 채로 두지 않으십니다. 빈 자리를 향해 은혜를 밀어 넣으시고, 낮아진 틈새로 새 생명을 흘려보내십니다. 결국 대림절의 고백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흥하시려면 내가 쇠하여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한 겹 더 낮추어, 주님이 오실 공간을 넓혀 드리는 은혜가 우리 하루의 길 위에 고요히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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