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이 일상이 될 때
[역대상 25:7]
그들과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명이라
역대상 25장을 읽으면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계속 등장합니다.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다시 스물네 반열로 나뉘어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합니다. 얼핏 보면 단순한 성전 조직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역대기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중요한 신앙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에게 찬양은 성전 예배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부수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입술로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찬양을 “신령한 노래”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에는 예언과 연결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찬양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다시 고백하고 선포하는 행위였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의 찬양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좋아야 찬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 찬송을 부를 수 있고, 기분이 좋아야 입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찬양은 우리의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때로 찬양은 오히려 흔들리는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의 진리 앞으로 데려갑니다.
염려가 밀려올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하고, 낙심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하며,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찬양합니다. 상황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또한 역대상 25장은 찬양이 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288명의 찬양 담당자들은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준비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이 곧 서열이 된 것은 아닙니다. 8절은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하고” 모두 제비를 뽑아 직임을 맡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명한가, 얼마나 앞에 서는가가 아니라 맡겨진 자리에서 얼마나 신실한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일상에도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반복되는 소리가 있습니다. 걱정을 반복해서 생각하면 마음은 걱정에 익숙해지고, 불평을 반복하면 영혼은 불평에 익숙해집니다. 세상의 소리만 계속 들으면 어느 순간 세상의 가치가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거룩한 반복이 필요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찬양 한 곡의 가사를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자신의 기도로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날에는 더욱 하나님의 진리를 먼저 입술에 올려 보십시오. 찬양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찬양해야 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채우고, 기도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 놓으며, 찬양이 우리의 감정과 삶을 다시 하나님께 향하게 할 때 신앙은 특정한 시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는 찬송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까지 붙드신 은혜, 넘어졌음에도 버리지 않으신 은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은혜가 우리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에서 시작된 찬송이 삶으로 이어져,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자리가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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