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0808 [역대상 12:16-18]
2026-08-08 06:24:01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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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이 도우심이라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 [역대상 12:18]


   다윗이 머물던 곳은 왕궁이 아니라 요새였습니다. 그는 이미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질 사람이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눈앞의 현실은 그 약속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왕좌에 앉기는커녕 사울의 추격을 피해 숨어 지내야 했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동역자인지 배신자인지 먼저 살펴야 했습니다. 특히 그를 찾아온 이들 가운데는 사울과 같은 지파인 베냐민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반가움과 경계심,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무조건 믿지도 않았고,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돌려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이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마지막 판단을 맡겼습니다. 이것은 모든 의심이 사라진 사람의 담대함이 아니라, 의심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려는 믿음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성령께서 아마새를 감싸셨고, 그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라는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요새를 곧바로 왕궁으로 바꾸어 주시지는 않았지만,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삼키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광야를 견디어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순간마다 하나님의 손이 그의 생명을 지키고, 약속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붙들어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은 다윗의 삶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 우리의 삶에도 여러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하면 우리는 먼저 막힌 길이 열리고 어려운 형편이 바뀌는 일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은 눈에 띄는 결과보다 훨씬 조용하고 깊은 곳에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을 즉시 없애시는 대신 그 어려움에 짓눌려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광야를 한순간에 끝내시는 대신 그 길을 걸어갈 힘을 하루씩 공급해 주십니다.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날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 마음이 무너진 뒤에도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완전히 떠나지 않았던 것, 잘못된 선택 앞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껴 걸음을 멈추었던 것에도 하나님의 세밀한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베냐민과 유다의 사람들을 보내셨던 것처럼 사람을 통하여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아픔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들어 주는 사람, 혼자 지고 있던 짐의 한쪽을 들어 주는 사람, 믿음이 흔들릴 때 말없이 이름을 불러 기도해 주는 사람을 곁에 두십니다. 그러한 만남은 너무 평범해서 처음에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아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가장 필요했던 때에 필요한 사람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을 하나님 대신 의지해서는 안 되지만, 사람의 손을 빌려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까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도움을 받는 자리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누군가에게 보내시는 도움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건넨 짧은 위로와 잊지 않고 드린 기도, 말없이 곁을 지킨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광야를 지나게 한 하나님의 손길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서로의 연약함을 감당하게 하시며, 그 만남을 통하여 아직 달라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평안을 주십니다.

   아마새는 다윗에게 사울의 추격이 언제 끝날 것인지, 왕위에 오르는 날이 언제인지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그 자리에서 “평안하소서, 평안하소서”라고 거듭 말하며 그 평안의 근거를 오직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모든 문제가 사라진 뒤에 찾아오는 편안함도 아니고, 앞으로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자신을 달래는 막연한 낙관도 아닙니다. 현실은 여전히 무겁고 내일은 보이지 않지만, 나의 삶이 하나님의 손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 기다림은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의 마음을 다듬으시고, 왕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셨으며, 그와 함께할 사람들을 곳곳에서 준비하셨습니다. 다윗의 눈에는 약속이 멈춘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기다림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응답되지 않는 기도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섬김,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와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지금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지나온 삶을 천천히 돌아보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 은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삶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우리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자랑할 것은 줄어들고, 은혜로 받았다고 고백할 것은 많아집니다. 무너지지 않은 것도 은혜였고, 다시 일어선 것도 은혜였으며, 오늘 여기까지 걸어온 것 또한 은혜였습니다. 오늘 하루, 눈앞의 형편보다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을 더욱 깊이 신뢰하고, 곁에 보내 주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따뜻한 도움이 되어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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