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0811 [역대상 14:13-17]
2026-08-11 06:04:27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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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불꽃 이미지.jpeg

다시 묻는 믿음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한지라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역대상 14:13-14]


   처음 겪는 일 앞에서는 누구나 조심스러워집니다.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작은 것 하나까지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일을 두 번, 세 번 겪고 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전에 해 보았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 정도는 결과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판단하고, 하나님께 여쭙기 전에 지난번에 했던 방법부터 떠올립니다. 가정의 일이나 직장의 일, 오랫동안 맡아 온 교회의 일도 그렇습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정하고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하나님께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한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경험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주지만, 그 경험이 오늘의 하나님의 뜻까지 알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열렸던 길이 오늘은 닫힐 수 있고, 전에는 서둘러야 했던 일이 오늘은 기다려야 할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은 어제 받았던 대답만 기억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의 형편을 들고 다시 하나님 앞에 앉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큰 승리를 거둔 뒤에도 그 자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은 얼마 전에도 르바임 골짜기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먼저 물었고, 올라가라는 말씀을 받은 뒤에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이 터져 나오듯 블레셋 군대를 무너뜨리셨습니다. 다윗은 그곳의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붙였습니다. 자신이 이긴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수를 무너뜨리신 전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패배했던 블레셋이 다시 같은 골짜기로 올라왔습니다. 다윗에게는 낯선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적도 같았고 전쟁터도 같았습니다. 어느 길로 나가야 하는지, 군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번의 승리를 생각하면 굳이 다시 물을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뜻밖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올라가지 말고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습니다. 다윗이 지난 승리만 믿었다면 듣지 못했을 말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전에 사용하셨던 방법을 오래 붙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다시 찾고, 효과가 있었던 계획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예전에 드렸던 기도를 같은 마음 없이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난번의 방법이 오늘의 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익숙한 승리를 되풀이하게 하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다윗을 곧바로 전쟁터가 아니라 뽕나무 수풀 앞의 기다림으로 데려갔습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뽕나무 꼭대기의 소리를 기다렸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이미 가까이 와 있었고, 다윗의 군사들도 무기를 든 채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시간이 답답했을지도 모릅니다. 적이 먼저 움직일까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고, 지금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가신다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때와 하나님의 때를 가려내야 했습니다. 마침내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자 다윗은 곧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기다려야 할 때에는 기다렸고, 움직여야 할 때에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가셨고 다윗은 그 뒤를 따랐습니다. 살다 보면 끝난 줄 알았던 걱정이 다시 찾아오고, 괜찮아진 줄 알았던 마음이 또 무너지며, 풀린 줄 알았던 관계가 다시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면 그동안의 기도는 무엇이었는지 허탈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지난번의 답부터 꺼내기보다,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다시 들어야 합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대신할 수 없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잘 안다고 생각되는 일 앞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묻고, 서둘러 앞서가기보다 주님께서 움직이시는 때를 기다리며, 먼저 가시는 주님의 뒤를 차분히 따라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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