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수 없는 말씀, 놓지 않으시는 은혜
[역대하 18:33]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의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나를 진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아합과 여호사밧은 함께 길르앗 라못 전쟁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전쟁에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매우 묘합니다. 아합은 자신의 왕복을 벗고 변장합니다.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 이미 자신이 이 전쟁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기보다 그 말씀을 피해 살아남을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계산으로 피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특별한 목표 없이 활을 당겼고, 그 화살은 수많은 군사들 사이를 지나 아합의 갑옷 솔기를 뚫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였지만 성경은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아합은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면 여호사밧 역시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미가야를 통해 분명한 말씀까지 들었으면서도 아합과 함께 전쟁에 나아갔습니다. 심지어 아합의 말을 듣고 왕복까지 입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람 군대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여호사밧이 부르짖었고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셨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여호사밧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음 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잘못을 분명히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를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은혜가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건져 다시 바른 길로 돌이키시는 은혜입니다.
아합과 여호사밧 모두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길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찾아왔음에도 끝까지 자기 길을 고집했고, 다른 한 사람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넘어졌지만 절박한 순간 다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시편 32편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죄가 가려진다는 것은 죄를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용서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용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못 본 척하신 것이 아니라 그 죄를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심으로 우리에게 용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변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에 찔리면 돌이키고, 잘못했으면 인정하며, 넘어졌다면 다시 주님께 부르짖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 갈 방법을 찾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말씀 앞에 나를 내려놓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 말고, 넘어졌을 때 주님께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회개하며 돌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긍휼로 붙드시고 다시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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