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0220 [여호수아 24:14-18]
2026-02-20 06:17:19
광주제일교회
조회수   47

검은불꽃 이미지.jpeg

오늘, 누구를 섬길 것인가?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여호수아 24:15]


   여호수아의 말은 시대를 정리하는 마지막 음성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창한 결단을 요구하기 전에, 이미 지나온 은혜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일하셨습니다. 부르시고, 건지시고, 먹이시고, 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의 이야기를 다 들려준 뒤에야 여호수아는 묻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은혜는 충분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왔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다른 의지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안전장치를 붙들고 있는 그 복잡한 마음. 그 마음을 조용히 들춰내는 질문이 바로 “오늘, 누구를 섬길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선택의 순간이 오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순종이 손해처럼 보이고, 기다림이 불안하게 느껴지며, 결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한 발 물러서고 싶어집니다. 겉으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만, 속으로는 계산과 두려움이 결정을 대신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말한 “오늘”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합니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조건이 아니라 현재의 자리에서, 내 마음의 주인을 분명히 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섬기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장 놓기 싫어하는 것, 가장 집착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 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고백은 감동적인 표어가 아니라 외로운 책임입니다. 다수가 어떻게 하든, 시대의 흐름이 어디로 가든, 나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선언입니다. 특별히 “내 집”이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을 비추어 봅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 안에서, 돈을 쓰는 기준에서, 시간을 배치하는 우선순위에서, 갈등을 다루는 태도에서 하나님이 실제 주인인가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예배의 시간만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꾸는 일입니다. 다른 주인을 내려놓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둘을 함께 붙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하나로 모입니다. 두려움과 계산 사이에서 찢기지 않고, 순종과 신뢰 안에서 단단해집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섭니다. 이미 나는 섬기고 있습니다. 무엇이 나를 가장 움직이는지, 무엇을 잃을까 가장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붙들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지를 돌아봅니다. 그 자리에 나의 주인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오늘, 누구를 섬길 것인가. 이 질문은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선택의 방향을 바꾸고, 결국 인생의 결을 바꿉니다. 은혜를 기억하며, 마음을 정직하게 비추며, 다시 한 번 주인을 분명히 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