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분만을 바라보며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율법의 첫머리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이 선언은 단지 계명의 서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된 삶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일깨워주는 구원의 기억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조건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위에 놓인 약속입니다. 이 은혜의 기억이 분명해질 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하신 첫 계명이 무거운 의무가 아닌 사랑의 초청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관계를 얼마나 진실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는 언약의 고백이며, 우리가 누구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혀주는 신앙의 나침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자주 그 중심을 잃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들에 더 큰 확신을 두며, 하나님보다 자녀, 재물, 평판, 자아를 앞세우는 일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신앙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형상을 만들지 말라.”(출 20:4) 겉으론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를 위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진 않은지, 신앙의 방향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형상으로 가둘 수 없는 분이시며, 우리의 방식대로 조정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신앙의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거래가 되고 맙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붙드십니다.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출 20:5) 질투는 그분의 사랑이 결코 무관심하지 않음을 말해 줍니다. 우리의 마음이 엇나갈 때마다 하나님은 아파하시며, 사랑의 언어로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한 분만을 바라보는 ‘방향의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지금 너의 마음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완벽한 결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한때는 선명했던 신앙의 방향이 흐려졌더라도, 다시 시선을 돌려 그분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고백 속에 이미 은혜는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형상이 아닌 말씀으로, 요구가 아닌 사랑으로,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 하루, 주저하지 말고 그 사랑 앞에 다시 서 보십시오. 흔들리는 마음 그대로라도, 어제보다 조금 더 하나님 쪽으로 나아가는 그 걸음 안에 회복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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