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정결하게 하옵소서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6)
성막은 접었다 펼쳤다 하며 이동이 가능한 반면
성전은 성막과 달리 항상 그곳에 있는 고정된 형태의 건물입니다.
성막의 크기보다 2~3배 정도 더 큰데 성전의 크기만큼 사용되는 각 기구의 크기나 수량도 넉넉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함에 다윗과 솔로몬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다윗과 솔로몬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사랑의 크기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선지자적 눈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재료를 모았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에게 건네받은 설계도를 따라 최고의 재료를 동원해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했습니다.
본문에 놋바다 라는 기구가 등장합니다. 모세시대에 있었던 물두멍과 같은 기구입니다.
이곳에서는 제사장들이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려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정결하게 합니다.
솔로몬 시대에 와서는 의미는 그대로이지만 용도가 조금 분류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정결 예식을 위한 놋 바다와 번제에 사용되는 희생 제물을 씻는 물두멍으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물두멍 제작을 말씀하실 때 다른 성소 기구들과 달리
그 크기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양식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작자가 하나님 마음을 구하고 알아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솔로몬이 제작한 놋바다는 크기에 대한 양식이 있습니다.
그 규모가 지금 단위로 환산하면 거의 70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크기여서 물탱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두 내용을 통해 증거하는 메시지는
물두멍이나 놋바다의 크기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용서하시는 용서의 크기라 할 수 있습니다.
먼지와 같은 우리 인생이 결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은 이미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한이 없는 은혜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우선, 놋바다와 물두멍 같은 기구들이 사람을 정결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은혜가 한이 없다’라는 사실이 우리 잘못을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정결함을 입으며 용서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어떠함을 알고 물로 나아와 그 물로 씻는 사람이 정결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며 회개하는 바로 그 사람이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거대한 은혜와 헤아릴 수 없는 용서의 은혜를 받습니다.
중요한 사실이 또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거룩한 직무를 행하기에 앞서 몸을 씻고 정결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과 친밀한 교제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교제 안에 쓸데없는 요소들이 잔뜩 끼어들어 심령을 상하게 하고 방해한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복잡한 마음을 쏟아놓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쉽게 생각하며 어떠한 준비도 없이 무례하게 나아가기 십상입니다.
이 또한 역시 사랑의 교제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기에 앞서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 사람의 일이 되지 않도록/
자기 이름 드러내며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뜻대로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영적으로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일상의 거룩함을 이루어가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무를 감당함에
하나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고 내면과 삶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 있다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 용서를 구하며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께서 한이 없는 은혜로 우리를 덮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사랑의 주님, 한이 없는 생명수 샘물로 우리 영을 씻어주시고 다시금 새 마음 새 영을 부어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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