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이기에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주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역대하 2:6]
성전을 짓게 된 솔로몬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다윗이 평생 마음에 품었던 일이었고, 이제 그 일을 아들 솔로몬이 맡게 되었습니다. 왕으로서도 자신의 이름을 오래 남길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성전을 얼마나 크고 아름답게 지을 것인가를 말하다가 문득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데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니 자신이 하는 일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보다 이런 일을 자신에게 맡겨 주셨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하나님보다 내가 하는 일을 더 많이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수고한 만큼 열매가 있는지,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마음이 머뭅니다. 반대로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 문제 하나가 마음을 가득 채워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에 따라 크고 작아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일이 잘 풀릴 때에만 함께하시고 길이 막혔을 때에는 멀리 계시는 분도 아닙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은 멈추지 않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그때는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몰랐지만, 한참 뒤에야 그 시간을 지나게 하신 뜻을 조금씩 깨닫게 된 일도 있습니다. 내 뜻이 이루어진 것이 은혜였던 때도 있지만, 오히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은혜였음을 뒤늦게 알게 된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지금만 바라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을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보다 크신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고백은 하나님을 내 생각 안에 가두지 않고, 다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그렇게 크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하나님께는 사람이 지어 드리는 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능력이나 도움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부르셨고 그의 손에 성전을 짓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 드리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받아 주시고 당신의 일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늘도 다 품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 된 뒤에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보여 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도, 섬김도 언제나 은혜가 먼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붙들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돌아보면 믿음이 흔들렸던 날도 있었고, 기도가 나오지 않던 때도 있었으며, 하나님보다 내 생각을 앞세웠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으키셨고, 길을 잃으면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셨으며, 때로는 사람을 통해 붙드시고 때로는 기다림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듬으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붙들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주님께서 나를 붙들고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주님께서 부족한 나에게 당신의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것을 깨달을수록 자랑할 것은 줄어들고 감사할 것은 많아집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이 고백은 자신을 낮추기 위한 말이 아니라, 받을 자격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사람의 고백입니다.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오늘도 하루를 주셨을까?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이기에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인데도 다시 말씀 앞에 설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으며,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아침에 다시 눈을 뜬 것도 은혜이고, 함께 살아갈 가족이 있는 것도 은혜이며, 오늘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삶의 한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손 안에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오늘 하루가 언제나 평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쁜 일도 있겠지만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도 있을 것이고,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도 있겠지만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모든 일을 내 뜻에 맞추려 하기보다 이 하루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잘되는 날에는 내 능력을 자랑하기보다 은혜를 기억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붙들며,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평범한 날에는 그 평범함을 지켜 주시는 손길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살다 보면 믿음은 특별한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아 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가 저물었을 때 오늘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나를 붙들어 주셨는지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이 한마디가 오늘 마음 한편에 오래 머물러, 나를 바라보다 낙심하지 않고 나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당연하게 지나쳤던 일상 속에서 은혜를 발견하고, 오늘도 그 은혜로 살았음을 고백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