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을 넘어서는 은혜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열왕기하 5:14]
살아가다 보면 우리 안에는 어느새 단단해진 생각들이 생깁니다. 많은 시간을 지나오며 얻은 경험이 있고, 실패와 후회를 통과하며 배운 판단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언제나 틀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 생각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은혜입니다. 다만 그 생각이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기 시작할 때, 신앙은 조용히 자기 확신의 모양을 띠게 됩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왔지만, 이미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장면을 그려 놓고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직접 나와 자신을 맞이하고, 손을 얹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오지 않았고, 사자를 통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했습니다. 그 단순한 말씀 앞에서 나아만의 병보다 먼저 드러난 것은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내 생각 안에서 일하시기를 바랄 때가 많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이미 응답의 모양을 정해 놓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 경험과 맞는 것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안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비추시고, 우리가 무엇을 더 의지하며 살아가는지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흔드시는 것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은 은혜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나아만에게 요단강은 단지 몸을 씻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그의 체면이 내려가고, 자존심이 낮아지고, 자기 확신이 꺾이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더 깨끗하고 더 훌륭해 보이는 다메섹의 강들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물의 깨끗함을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강물이 아니라 나아만의 마음이었습니다. 몸의 병보다 더 깊은 병은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 기준을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시간이 있습니다.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문제가 있고, 내 방식대로 풀리기를 원하는 일이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관계의 문제, 사역과 삶의 무게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길을 묻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원하는 길을 확인받고 싶어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대한 길을 열어 주지 않으시고, 낯설고 낮은 자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왜 하필 이 길인지,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시는지, 왜 더 좋은 방법이 있어 보이는데 이 말씀 앞에 서게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루고 계셨던 것은 내 앞의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문제를 통해 내 마음의 방향을 고치시고, 내 믿음의 뿌리를 깊게 하시며, 내가 붙들고 있던 작은 확신을 내려놓고 하나님 자신을 더 의지하게 하십니다. 은혜는 문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문제 속에서도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마침내 요단강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내려간 것은 강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값을 내려놓았고, 장군의 체면을 내려놓았고, 무엇보다 하나님보다 더 옳다고 믿었던 자기 생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일곱 번 몸을 잠갔을 때, 그의 살은 어린아이의 살처럼 회복되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높은 자리에서 붙드는 사람에게보다,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사람에게 더 깊이 임합니다. 다 이해해서 순종한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아도 말씀 앞에 자신을 맡겼을 때 회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여전히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들이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게 만드는 생각, 순종하지 못하게 만드는 생각, 기도보다 계산을 먼저 하게 만드는 생각,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경험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드럽게 부르십니다. 내 생각을 없애라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 놓이게 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틀리셨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일찍 결론을 내렸고, 너무 좁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판단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말씀 앞에서 조용히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제 생각보다 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 계산보다 주님의 뜻이 선합니다.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 그 고백으로 한 걸음 내려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리시고, 꺾으시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시며,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은혜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