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3~4)
남 유다에서는 아마샤가 요아스의 뒤를 이어 등극하고
북 이스라엘에서는 예후 왕조의 4대 왕인 여로보암 2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왕을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아마샤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지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산당은 성전 건축이 있기 전에는 임시적 제사 장소였지만 성전 건축이 완공되었을 때에는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사실은, 산당이 더 이상 하나님을 위한 곳이 아닌 우상의 전으로 전락했습니다.
따라서 이곳을 허용하는지 폐하는지 여부가 영적 상태를 나타내며 왕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한편, 아마샤는 연좌제를 폐지합니다.
이 일을 행함에 정책을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라는 하나님 명령을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 아마샤가 에돔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마음이 높아졌는지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싸움을 걸어보지만, 결과는 참패합니다.
역대기 본문에는 이 전쟁에 대한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아마샤와 그의 백성들은 에돔 사람 일만 명을 쳐부수고 땅을 차지한 것을 넘어
그들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보시고 아마샤와 그의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본문을 우리에게 비추어보면 우리 마음은 물론 신앙이 참 변덕스러움을 느끼고 경험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다가도 한 순간,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마음이 참 약하기에 늘 점검하고 경계하며 새롭게 해야 할 일입니다.
여로보암 2세는 북 이스라엘 1대 여로보암과 다른 여로보암입니다.
재위 기간에 그는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합니다.
그런데 이 회복의 역사는 여로보암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상황 그 고통을 보시고 여로보암의 손을 통해 구원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 하나님이 계셔서 일하심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윗 같지는 않았던 아마샤,
여호와를 향한 그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지는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모든 죄를 그대로 답습하는 여로보암 2세,
그는 평생 우상숭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갇힌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현재 어떠한 모습이며 하나님에게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요?
우리 신앙이 시험을 치르고 통과해야만 하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라는 의식 속에 살아갔듯이 자기 성찰의 삶과 성숙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사람의 시선을 넘어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에게 주목하는 삶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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