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서 낮아지는 예배자
[사무엘하 6: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사무엘하 6장 16-23절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일은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중심이 왕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라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었습니다. 그는 왕의 체면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귀히 여겼습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다윗의 예배는 감정적 흥분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백성을 축복했으며, 온 백성에게 기쁨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예배는 공동체를 축복하는 삶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바라본 미갈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그는 창문으로 내다보며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 다윗의 예배를 사람 앞에서 체면을 잃은 행동으로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를 가로막는 가장 깊은 문제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임을 보게 됩니다. 마음이 은혜를 잃으면 예배도 판단의 대상이 됩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도 냉소가 나옵니다.
다윗은 미갈에게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이 한마디가 참된 예배자의 중심입니다. 예배는 사람 앞에서 나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것은 수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참된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셨고, 십자가의 낮아짐을 통해 구원의 영광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도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예배의 현장에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창문 너머에서 평가하는 사람입니까? 나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체면을 붙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낮아지는 예배자로 서 있습니까?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서로의 믿음을 업신여기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서로를 축복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냉소와 판단의 말을 내려놓고, 축복과 격려의 말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귀히 여기며, 여호와 앞에서 낮아지는 예배자로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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