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리에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사무엘상 7:2]
신앙이 무너질 때는 큰 사건이 먼저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 없이도 하루가 잘 흘러가는 경험이 반복될 때 시작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하나님보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먼저 떠오르고, 기도를 하려고 앉아도 마음은 금세 다른 생각으로 흩어지며, 말씀을 읽어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마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한 구절에도 마음이 오래 머물렀는데, 이제는 읽고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스스로를 크게 문제 삼지 않게 됩니다. 신앙이 식어 가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상태가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더 깊은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사무엘상 7장에서 이스라엘이 지나온 이십 년의 시간은 바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그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올라옵니다. 여전히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다시 찾고 싶어지는 마음, 하나님 앞에 다시 서고 싶어지는 갈망이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옵니다. 성경은 그것을 “여호와를 사모하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사모함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 쌓이면서 비어 버린 마음이 스스로 깨닫게 되는 신호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올라올 때, 우리는 그것을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모함이 바로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부르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따라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할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안심하려 했던 자리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막연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거했던 것처럼, 나를 붙들어 주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관계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나를 지켜 줄 것처럼 느껴졌던 자리에서,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하나님께 다시 내어 드리는 것이 돌아옴입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삶에 드러납니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먼저 해결 방법을 찾았는데, 이제는 기도할 이유가 먼저 떠오르고, 예전에는 마음이 흔들리면 붙잡을 다른 것을 찾았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머물러 보려고 애쓰게 됩니다. 그렇게 방향이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돌아보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지나온 것 같았던 시간들까지도 하나님이 붙들고 계셨다는 사실을. 그래서 어느 날,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조용히 이런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나를 도우셨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여기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다시 사모하며 그분께로 조용히 방향을 돌려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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