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구원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6)
사람마다 소망하는 구원을 쟁취하려 참 많이 애를 씁니다.
이를 위한 수고와 헌신은 참 대단하지만, 구원을 이룸에는 실패합니다.
구원은 그 말속에 이미 그 뜻이 담겨 있듯이,
위험이나 어려움 당한 이를 누군가 외부에서 손을 내밀어 건져내어 주는 일을 말합니다.
자기 힘과 능력으로 스스로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가리켜 구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 몰래 블레셋 초소에 잠입을 시도합니다.
그곳으로 침입하려는 지형이 거친 바위가 있는 평탄하지 않은 길입니다.
그는 그것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블레셋 초소에 침입하려는 의지가 분명합니다.
또한 그는 블레셋 사람들을 가리켜,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할례받지 않았다는 말은 물리적 표현이 아닌 이스라엘 신앙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따라서 블레셋은 민족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여호와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족속이었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초소에 침입하면서 내보인 신앙의 태도는 이러합니다.
그에게서, 블레셋 초소에 침입하려는 목적과 의지, 실행력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마음에 앞서 하나님 뜻을 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를 알기 위한 구함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늘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살피는 일입니다.
우리가 본래 믿음이 없는 존재인데 무엇을 하면 믿음이 생길까요?
믿음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말씀과 확신이 날마다 필요합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서 삶을 마주할 믿음과 용기를 주십니다.
요나단이 하나님 뜻을 구하고 그 뜻이 섰을 때 뒤돌아보지 않고 하나님 뜻을 수행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뜻을 구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보다 앞서 요나단의 중요한 고백 하나가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주체는 요나단 자신이나 무기든 소년, 이스라엘 민병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며, 이 일을 행하심에 그 어떤 장애 요소도 그분 앞에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백성이 할 일은, 자기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만 부르고 ‘믿습니다’하는 게 아닙니다.
무작정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참여하여 순종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존재로 살아감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고 있으며 때가 되어 완성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되 우리에게 뜻하신 바를 나타내 보이시며
그것을 감당할 힘과 능력과 용기를 더해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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