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 나를 영접하게 하신 하나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32)
우리 그리스도인의 선한 일은 기준점이 우리 내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만족과 뿌듯함을 느끼고 어떤 공덕을 쌓기 위해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존재와 행위가 무엇이 되었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의 영광을 위함이 목적입니다.
이와 함께, 세상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어 살아나게 하는 삶이 궁극적 목적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자신이 드러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잘 아시기에 우리는 중보자적 역할로 충분합니다.
다윗이 갈멜에서 이름난 부자 나발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도움에 앞서, 그는 자신의 소년들을 통해 나발의 목자들을 지키며 선대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양식을 구하며 도움을 청하지만 나발은 이러한 말로 거절합니다.
‘누가 다윗이냐? 누가 이새의 아들이냐? 요즘에는 자기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오는 종들이 많다던데.
내 빵과 물과 또 양털 깎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오라고?
그러고는 어디서 온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내주라고?’(새한글성경)
다른 이야기 없이 깨끗하게 거절해도 충분했을 텐데 모욕적인 말과 태도를 나열합니다.
소년들로부터 이 말을 전달받은 다윗이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나발을 죽이러 달려갑니다.
그가 가진 칼(무력)로 일을 해결하려 합니다.
칼로 사울을 제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났던 그였지만, 나발의 모욕과 무시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 내면에 찾아들어 분노를 일어나게 만드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흔들리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의 들끓는 마음을 누그러뜨린 사람이 있습니다.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이며, 아비가일에게 이러한 상황의 실상을 알려준 하인이 있습니다.
이들은중재 역할을 감당한 사람들입니다.
중재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가운데 우둑커니 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꼭 그러한 일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 상황에 들어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상황을 선으로 바꾸도록 애쓰는 사람이 중재자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따르면, 자신이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직접적으로는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대처가 있었지만, 이면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발의 결말이 어떠힙나까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37~38)
다윗이 손을 거두니, 하나님께서 손을 펼치셔서 그를 치십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상황을 모르시는 게 아닙니다.
나발의 말과 행동, 태도를 보시며 들으시고 잘 아십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깨어진 관계성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죄와 죄의 값인 사망으로부터 무너지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존재로 어떠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할까요?
그리스도를 따라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삶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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